김유봉은 직동청년탄광 세포비서이자 영웅탄부로 20년동안 52명의 석탄공을 키워냈고, 해마다 10만 톤을 석탄을 증산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노력영웅으로 이름이 난 인물이다.
당에서도 영웅탄부였던 김유봉을 석탄공업성으로 소환하려고 한다. 하지만 김유봉은‘장군님께서는 탄부 김유봉을 알고 계시지 막장을 떠난 김유봉을 아시겠습니까.’라면서 탄광에 남기로 한다.
김유봉은 국가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석탄이 곧 전기다.’는 마음으로 더욱 더 많은 석탄 증산을 고민한다. 그러다 침수된 탄광을 복구하여 3,000톤의 석탄을 더 생산하기로 계획하지만 침수된 탄광의 갱도를 복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사람들이 말린다.
이 일을 계기로 탄부들은 장성민의 유물을 보면서 10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 10년 전, 탄을 캐다가 굴이 무너지면서 갇히게 된 탄부들은 굴속에 갇혔으면서도 밖으로 나가는 굴을 뚫지 않았다. 장성민은 불빛을 막장으로 비추면서 ‘탄을 더 캐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야’라면서 10만 톤의 발파구멍을 뚫기로 했었다.
한편 당에서는 김유봉을 다시 석탄공업성으로 소환한다. 당비서와 탄광 사람들은 김유봉도 이제는 50이 넘었으니 ‘가야한다.’고 조언한다.
김유봉이 평양으로 떠나는 날, 사람들은 몹시 서운해 하면서 배웅하러 나온다. 김유봉은 자동차가 아닌 석탄이 가득 실린 탄차를 타고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에 도착한 김유봉은 만수대의사당을 찾는다. 김유봉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참가했던 그 자리에 앉아 김정일이 ‘석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했던 것을 떠올린다.
탄광으로 돌아온 김유봉은 침수갱의 반대편을 뚫어서 물길을 돌리기로 계획한다. 김유봉의 계획대로 침수갱을 뚫기로 결정한다.
침수갱의 막장을 뚫기로 한 전날, 김유봉은 막장 앞에서 발파선을 고치다 폭발과 함께 죽게 된다. 석탄 증산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희생정신을 보인 김유봉은 많은 사람들의 깊은 애도 속에 신미리애국열사릉에 묻혀 기념된다.